김수지 작가님과의 솔직+담백+조촐한 인터뷰
툭, 던지듯 부탁드린 인터뷰에 선뜻 응해 주신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럼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1. 글 쓸 때 가장 우선시하는 것
: 글 쓸 때 꼭 뭘 우선시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말한다면, 시놉시스일까요? 다른 작가분들은 어떻게 쓰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글을 쓰기 전에 시놉시스에 꽤 공을 들이는 편입니다. 먼저 소설의 배경과 세계관, 주인공을 설정하고, 인물 설계도와 관계도를 세세하게 쓴 뒤, 기승전결을 나눠 큰 스토리를 씁니다. 그렇게 대략적인 스토리와 등장인물, 이야기의 흐름, 결말까지 결정되면 각 챕터로 세분화해 그 챕터에 들어갈 각각의 에피소드를 만듭니다.
물론 실제 글을 쓰기 시작하면 설정이나 내용이 조금씩 바뀌기도 하고 에피소드가 추가되기도, 삭제되기도 합니다만, 대개 이 시놉시스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시놉시스를 세세하게 만들어 두면, 글이 막힐 때도 도움이 되고요. 혹은 연중(;;)을 했을 때, 꽤 시일이 지난 뒤에도 다시 시작하기 수월하지요.
하지만 단점은 시놉시스 쓰는 걸로 만족하고 끝내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거. 나중에 써야지, 하고 쌓아 놓은 시놉시스만 중딩 때부터 지금까지 켜켜이 쌓여 어마어마한 목록으로 남아 있지요. 이걸 죽기 전까지 다 쓸 수 있을까 싶습니다만, 어쨌든 제가 글을 쓸 때 가장 우선하는 게 있다면 시놉시스인 것 같습니다.
2. 우집쥐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과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이 있다면
: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장면은 지효가 손톱을 물어뜯는 장면 입니다. 사실은 그 장면을 더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하고 싶었거든요. 손톱을 절반 이상 물어뜯어놔 남은 것만 덜렁거리고 있었다든가, 손끝의 살점까지 다 뜯겨 나가 있었다든가, 피가 콸콸콸 흘러내려 바닥까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든가……. 물론 중간에 이성을 되찾고 자제했습니다. 안 그래도 연재 내내 벌벌 떨고 계시는 독자분들의 멘탈이 조금 걱정이 되어서요.(연재 중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불안하다’는 말이었기에) 그래서 나름대로 순화해서 썼는데, 이제 와서는 조금 후회가 됩니다. 좀 더 끔찍하게 썼어도 됐을 텐데. 지효 안의 괴물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 조금 아쉽습니다.
: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둘의 이별 장면입니다. 둘의 이별은 소설 전반부를 아울렀던 팽팽한 긴장감이 해소되는 대목이지요. 아슬아슬하게 몰아가던 벅찬 호흡을 갈아 마시는 지점이기도 하고, 지효에게 맞춰졌던 초점이 현수에게로 돌아가는 지점이기도 해서, 집필 당시에도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공을 들인 만큼 마음도 쓰이지요.
3. 출간한 작품 중 제일 애착이 가는 인물
: 사실 완결을 내고 나면 너무나도 후련한 나머지, 별 미련이 안 남습니다. 그래도 굳이 한 명을 꼽아보자면…… ‘미온의 연인’에서 지수혁 캐릭터가 좀 마지막까지 불쌍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뭐, 대신 걔는 돈이 많잖아요. 하하하.
4. 가장 인상 깊었던 댓글 또는 리뷰
: 모든 리뷰와 리플이 다다다 전부 소중합니다.(위선자!)
하지만 최근 제일 감동했던 리뷰는 ‘우리 집에는 쥐가 있다’를 연재할 당시, P사이트에 올라왔던 한 응원글이었습니다. 과분하리만치 극찬을 해 주셔서 민망하기도 했지만, 역시나 칭찬은 기쁜 것이죠. 고래도 춤추게 한다잖아요? 최근 제일 기억에 남는 인상 깊은 응원글이었습니다.
5. 전업이신지, 아니면 다른 직업이 또 있는지
: 지금은 휴직 중입니다. 제 본업이 삼교대 근무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글 쓸 여건이 안 되거든요. ‘우리 집에는 쥐가 있다’도 중간에 휴재 기간이 참 길었었지요. 꼭 글 때문만은 아니고, 당분간은 쉴 생각입니다. 재취업 계획도 있는데…… 글 쓰는 게 좋아서 웬만하면 본업과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중입니다.
말하고 보니…… 지금 전 그냥 백수네요? 여태까지 자각이 없었습니다. ……젠장.
6. 도전해 보고 싶은 것 (작가로서든 개인적인 것이든)
: 서너 권짜리 장편 시대물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사실 봉루를 거의 7년 만에 재작업하면서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처럼 길게 쓸 수 있었을까. 초기작이기 때문에 미숙한 점이나 진부한 점들은 많았지만, 그래도 10대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는 열심히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봉루’를 작업하면서, 지금의 내 관점과 가치관, 생각들을 담아내어 장편 시대물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충 스토리와 인물만 설정해 놓고 자료를 모으는 중인데…… 준비하는 데만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네요. 그래도 서른 되기 전에는 도전을 해 볼 계획입니다.
그 밖에 스릴러물이나, 서정적이고 잔잔한 사랑 이야기도 써 보고 싶네요.
7. 인상 깊었던 책이나 영화
: 다 옛날 영화입니다만, 제일 좋았던 거 몇 개를 뽑아 보자면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프리덤 라이터스’, ‘양들의 침묵’, ‘레옹’, ‘워크 투 리멤버’입니다. 몇 번이나 보고, 또 보고 하는 영화입니다. 혹시 보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면 꼭 한번 보시라고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8. 스스로 생각하는 본인의 성격과 정신 연령
: 최근 심심풀이로 해 본 테스트에 의하면 제 정신 연령은 20대 중반입니다. 아무래도 제 정신은 실제 나이를 충실히 따라가고 있나 봅니다.
: 성격은 그냥 평범해요. 자의식이 좀 강하고, 낯가림을 조금 하고, 평소에는 얌전 빼는 성격입니다만, 일단 경계심을 풀면 굉장히 수다스러워지는 경향이 있지요. 그래서 가끔 친구가 이중인격자라고 합니다. 남동생은 저보고 너무 냉소적이라는데…… 전 로맨스 소설을 쓰는 여자잖아요? 그럴 리가 없지요. 전 분명 델리케이트하고 감수성 풍부한 녀자일 겁니다. 아하하하.
9.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 헤드셋을 끼고 하이브리드 록 음악을 듣거나,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거나 하면서 풉니다. 전자 기타와 드럼 소리가 어우러진 강력한 헤비메탈 음악을 듣고 있으면 속이 뻥 뚫리는 게, 아주 좋아요. 시트콤을 보는 것도 좋습니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거든요.
10. (반려동물) 길쭉이 자랑 타임
: 네에. 그렇습니다. 저희 집에는 진짜로 쥐가 있습니다! 길쭉이는 팬더래트인데요, 햄스터와는 다른 길쭉하고 뾰족한 외모에 놀라서 ‘길쭉이’라고 이름 붙여 버렸습니다. (좀 성의 없나?) 태어난 지 2주 됐을 때 분양받았는데, 완전 한심한 겁쟁이예요. 항상 구석에 숨어 있어 몇 주간은 얼굴도 못 봤을 정도였죠. 지금도 저 말고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재빨리 숨어 버립니다. 그래도 끈기 있게 돌봐 준 덕인지 이제 저만은 조금씩 따르기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도가 지나칩니다. 건방지게 침대로 기어올라와서 난리치기도 하고, 머리 위에 올라앉기도 하고, 잘 때 와서 깨우기도 하고, 이어폰을 물어뜯기도 하고…….
아…… 써 놓고 보니 자랑은 아니네요. 그래도 제 눈에는 귀여워요. 오래 살아 줬으면 좋겠습니다.
11. 작가님에게 독자란?
: 내 사랑입니다(위선자!). 아뇨아뇨. 정말로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독자분들 중에는 제가 학생일 때부터 응원해 주신 분들도 계시거든요. 개인적으로 굉장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입학 때 반 배치고사에서부터 수능, 국가고시, 취업 준비까지 독자에게 응원 받아 본 작가가 몇이나 될까요?(혹시 의외로 많은가?) 심지어는 몇 년간 잠수 탔을 때도 꿋꿋이 기다려 주신 분들도 계시고…….
그 애정에 제대로 보답해 드리지 못한 거 같아서 저로서는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쿨쩍)
12. 작가님에게 출판사란?
: 딱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고…… 비유를 하자면 미용실?
그래요. 미용실 의자에 어색하게 앉아 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출판사에 자주 느낍니다. 미용사와 마주했을 때처럼 “이 사람들은 프로잖아. 믿고 맡기면 무조건 잘될 거야!” 하고 막연한 신뢰감을 느끼는 동시에 “과연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이심전심해서 알아줄까?” 하는 불안감도 느끼고, “내가 모발이 너무 안 좋아서 모양을 내기 힘들 텐데……” 하는 안쓰러움을 느끼기도…… 나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지?
아니아니. 괴상한 비유는 집어치우겠습니다. 출판사는 제게 협력자, 혹은 동업자입니다. 네에. 이게 좋네요. 이걸로 가겠습니다.
13. 어떤 작가이고 싶은가
: 갈수록 탈피를 거듭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처음 글을 쓴답시고 공책에 샤프로 끄적거리기 시작했을 때, 설마 제가 스물여섯이 될 때까지 글을 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열세 살 때 처음으로 썼던 글, 열여섯에 썼던 글, 스물한 살에 썼던 글, 그리고 지금 스물여섯 살에 썼던 글이 다 다르고, 관점이 뒤바뀌고, 주인공들의 성향도 변해 가는 걸 보면서, 앞으로는 내가 어떤 글을 쓰게 될까 하고 스스로도 호기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부디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꾸준히 계속 쓸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제발 지치지 말고, 질리지 말고, 끈덕지게 쓰고, 또 쓰고, 이것저것 새로운 도전도 해서 앞으로 적어도 40년은 글을 쓰고 싶어요. 결론을 말하자면…… 제 목표는 지구력이 강한 작가네요.
14. 닉네임 ‘헤나피쉬’는 무슨 뜻인지
: 헤나피쉬는 hennafish입니다. 앞에 헤나는 문신이나 염색할 때 쓰는 염료인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어깨에 물고기 모양의 헤나 타투를 하려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헤나피쉬입니다. 물론, 어머니께서 격하게 반대하셔서 못했습니다. 결국…… 별 뜻은 없습니다.
네, 인터뷰는 여기까지입니다.^-^
김수지 작가님에 대해 평소 궁금해하셨던 부분들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셨길 바라며~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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